[여행의 향기] '魚米之鄕' 항저우… '두부 넣은 생선 머리'가 건륭제 사로잡아

입력 2018-04-15 14:23   수정 2018-04-15 14:24

'왕초'의 중국 음식여행 (3) 항저우

중국의 맛을 찾아서…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정치군사적 권력과 경제문화적인 물산으로 대별하면 ‘북방의 권력과 강남의 문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방의 중핵이 최근 1000년 동안 대륙의 수도였던 베이징이라면, 강남의 대표는 동진 이래 남송을 거치면서 오랫동안 문화의 중심이었던 항저우라 할 수 있다. 중국 음식에 가장 영향을 많이 주고 있는 팔대 요리 가운데 저장음식(浙菜)이 포함돼 있다. 저장의 중심이 바로 항저우(杭州)다.


항저우는 풍요로운 농토와 촘촘한 수로가 결합해 농수산업과 상공업은 물론 무역까지 크게 발전했고 상당한 재부를 축적했다. 재부는 곧 문화로 귀결됐고, 음식은 고급스러운 미식으로 발전했다. 어미지향(魚米之鄕)이란 말 그대로 강과 바다의 풍부한 해산물부터 차에서 쌀에 이르는 기름진 농산물이 한데 어우러진다. “하늘에는 천당, 땅에는 쑤저우와 항저우”란 말이 과장만은 아니다.

황제의 강남순행 이야기 담긴 환판얼 왕룬신

항저우 여행객은 누구나 서호(西湖)를 찾게 된다. 서호 근처의 가오인 미식가(高銀美食街)는 일부러 일정을 만들어 찾아갈 가치가 있다. 서호의 동문 정면에 허팡가(河坊街)가 있는데 이 길을 따라 800여m를 가면 허팡가 보행가가 나온다. 이 보행가와 평행한 북쪽 길이 가오인 미식가다.


가오인 미식가에는 황판얼(皇飯兒)이란 식당이 있다. 허팡가 보행가에는 왕룬싱이란 자매 식당도 있다. 황판얼의 간판에는 건륭어제라고 쓰여 있다. 지방 도시의 일개 식당이지만 범상치 않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건륭제가 나라 안을 두루 살피며 돌아다니는 강남순행을 갔을 때였다. 하루는 평복을 하고 혼자서 우산(山: 허팡가 남쪽의 야트막한 산)에 올라 첸탕강과 서호를 바라보며 놀다가 갑자기 비를 만났다. 건륭제는 근처 민가의 허름한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다가 배가 고파 그 집 문을 열고 들어가 한 끼를 청했다. 집주인 왕씨는 북방에서 온 게 분명한 이 낯선 여행객이 황제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무튼 가난한 집이라 부엌에 있는 것이라고는 생선 대가리 반 토막과 두부 한 모였다. 여기에 두반장을 넣고 자글자글 끓여서 내왔다. 춥고 배고팠던 건륭제는 아주 맛있게 먹었다. 은자로 밥값을 치렀다. 건륭제는 자금성에 돌아와서도 그 맛이 생각나 황실 주방에 몇 번이나 주문을 했으나 당연히 그때 먹었던 그 맛이 아니었다.

건륭제는 다음 순행에서 그 집을 다시 찾아 그때 그 요리를 청했다. 왕씨는 황제를 위해 정성껏 음식을 준비했다. 건륭제는 음식값으로 은자 이십 량을 내리면서 황판얼이란 세 자를 친필로 하사했다. 왕씨는 황판얼 왕룬싱(皇飯兒 王潤興)이라는 식당을 열었다. 그야말로 황제 마케팅을 한 것이다. 장사는 흥했고 두부를 넣은 생선 대가리 요리는 이 식당의 나서우차이(대표적인 음식)이자 항저우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발전했다.

보행가에 있는 왕룬싱 허팡가점은 1934년 문을 열었으니 이것도 80년이 훌쩍 넘은 식당이다. 왕룬싱을 한자의 자획을 풀어서 나눈 파자(破字)가 재미있다. 룬(潤)이 핵심이다. 물()이 있고 문(門) 아래 왕(王)이 있으니 황제가 비를 피해 문을 열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왕(王)씨가 흥(興)하게 됐으니… 황제 마케팅의 사연이 그대로 담겨 있다.

중국 전문가도 인정한 깊은 맛

나는 이 식당을 2011년 취재해 졸고인 《중국식객》에 자세하게 소개한 바 있었다. 나의 음식학 선생님인 신계숙 배화여대 전통조리과 교수와 함께 금년 1월 말 황판얼을 다시 찾을 기회가 생겼다. 신 교수는 학부에서 중문학을 공부하고 서울의 유명 중식당에 입사해 10여 년 불판을 잡은 뒤 중국으로 유학 가 중국 음식을 연구한 박사다. 식당에서 첸룽위터우와 구이화눠미어우, 바바오더우푸, 황페이쥐청쯔 등을 주문했다. 신 교수는 첸룽위터우의 깊은 맛을 제일로 평가했다. 찹쌀밥으로 구멍을 채운 연근도 훌륭하고 맛살을 튀겨 만든 요리도 훌륭했다.

가오인 미식가의 식당들은 어디를 가든 상당한 내공이 있다. 황판얼 다음에 또 한 끼의 기회가 생긴다면 주저하지 말고 다른 식당의 문을 열어보라. 메뉴 사진을 보고 맛있어 보이는 것을 과감하게 주문해보자.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가오인 미식가의 옆길인 허팡가 보행가를 걸어보라. 현대 중국의 세련된 디자인에서 티베트 향기가 진한 액세서리, 전통 약방에서 샤오츠까지 아주 다양한 상점과 좌판이 즐비하다. 허팡가 동쪽 끝에는 간식 거리가 있다. 골목 양측으로 샤오츠 노점상이 가득 차 있고, 가운데에는 공용 식탁이 길게 이어져 있다. 만두 국수 꼬치 과일 철판요리 완자 그리고 개구리와 참새에 연근까지 정말 다양한 길거리 간식이 넘쳐난다.

소동파와 악비의 묘 있는 서호 호숫가

신계숙 교수와 식사를 마치고는 서호 호숫가를 한 시간 정도 걸었다. 서호는 오래전에는 첸탕강의 하구로 바다와 접하고 있었으나 동한 시대에 방파제를 만들면서 바다와는 격리된 호수가 됐다. 오늘날의 서호는 바다로부터 50㎞ 이상 안쪽이다. 서호는 둘레가 15㎞ 정도로 느긋하게 하루 걷기에 적당하다. 소동파가 항저우 자사로 부임해서 만든 제방(蘇堤)도 걷기에 좋고, 레이펑탑(雷峰塔)과 악비의 묘와 같은 역사 명소는 물론 저장성 박물관과 미술관 등의 볼거리도 풍부하다.

호숫가에는 러우와이러우(樓外樓)라는 유서 깊은 항저우 식당이 있다. 이 식당도 1848년 개업했으니 17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쑨원, 루신에서부터 현대 중국의 명사들이 즐겨 찾는 항저우의 대표적인 식당이다. 저우언라이가 외국 귀빈들을 위한 공식 연회를 수차례 열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서호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꼭 들러 가는 명소의 하나다. 러우와이러우 말도 운치가 있다. 이 명칭은 식당 주인이 한 학자에게 부탁해 지은 것인데, 남송 시대 임승의 시 산외청산누외누(山外靑山樓外樓: 산 너머 청산이요, 누각 건너 누각이네)에서 차용해 자신의 집 건너편 식당이란 뜻을 복합해 지었다고 한다.

이곳에서의 메인 요리는 서호의 민물생선으로 만드는 시후추위(西湖醋魚)가 적당할 것이다. 단맛 속에 신맛이 들어 있다. 이 요리는 집을 떠나는 시동생에게 훗날 출세를 하더라도 백성들의 고통을 잊지 말라는 뜻에서 일부러 단맛 속에 신맛이 나오게 만든 요리라고 한다. 쑹싸오위겅(宋嫂魚羹) 역시 항저우 음식으로 추천하는 음식이다. 농어를 주로 사용하는데 중국식 햄과 죽순 버섯 등을 넣고 끓여낸 국의 일종이다. 남송의 고종이 재위 36년 만에 황제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고는 이곳 서호를 찾아 유람할 때 송씨 부인이 하는 이 음식을 즐겨먹어 그때부터 유명해졌다고 한다. 새우에 찻잎을 넣고 요리한 룽징샤런(龍井蝦仁)도 담백한 강남 요리로 유명하다. 둥포러우(東坡肉)는 후베이 음식이지만 소동파가 항저우에 산 적이 있어 항저우 음식인 듯이 이곳에서도 유명해졌다.

항저우는 도시 분위기에서도 유연하고 매너가 좋기로 유명하다. 자동차가 경적을 울리지 않고 행인에게 양보하는 교통문화는 중국의 다른 도시와는 사뭇 다르다. 이런 분위기 역시 항저우의 미식과 상통하는 것 같다. 항저우가 여행객에게 보내는 유혹의 손짓일 수도 있다.



윤태옥 여행작가

이메일 kimy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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